1. 애잔한 한 걸음
어느 날이었다
밖은 염화구리를 깔아 놓은 듯 짙푸른색이다
어디선가 황금빛 나비가 가슴팍을 뒤집고 날아든다
주위엔 빨간 상사화가 만개 하여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보일 듯 말 듯 발 끝에 묻혀온 그리움은 심장 끝자락에
살포시 주저 앉는다
계곡 너머 숨어 있던 맨들한 돌멩이의 숨겨 놓은 사연일까
내려 앉은 그리움이 뜨겁다
다솜 다솜 안아줘야지
혹여 눈물샘 터지면 가만히 눈도 감아주자
달그림자 따라 흔들리는 뒷걸음일지라도
당신과 동행하리라
걷다가 맨들한 돌맹이 만나면 주머니속 깊이 숨겨져 있던
손 살며시 내밀어 따뜻한 온기 전하리라
눈 앞에 푸른벌판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을 만나면
나
미련 없이 발끝 먼지 털어내고 먼저 가 기다리는
내사랑 품에 안기리라
뜨겁던 밤 그 날처럼.
2. 맹세/박지수
너의 걸음이 져며 져며 오고 있다
두 발은 이미 마비 되어 버렸다
흰 목련 피는 날 오겠다고
빨간동백 질펀한 호숫가 벤치에서
맹세한 너는 간데 없고
하얀입김에 툭툭 떨어지는 고독을 안고서
네가 오고 있다
두 발은 뭍에 갇혀 버리고
두 팔은 하늘가에 멈춰 버렸다
허둥대는 심장만 고장난 나침판이 되어
갈 바를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미 심장안으로 콕 박혀 버렸다
넌 목련도 빨간동백도 아닌 세상의 고독을 안은채였다
나의 두 손은 무엇을 위해 모았을까
나의 두 발을 무엇을 기다리며 종종 거렸을까
안아야 하나 안아야 하겠지
고독으로 휘감은 그가 나의 그리움이니까
너와 함께 하는 길고 긴밤
산골 원두막 촛불은 밤새 꺼지고 꺼지지를
반복하며 끝내는 살아나리라
3. 그리움/박지수
몽글 몽글 심장이 가렵다
알 수 없는 울컹함에 두 눈이 뜨겁다
한 세월을 안고
두 세월을 건너다
어느 깊은 산골 너머에 남겨 두었던 사연인데
초록잎이 변신술을 취할 때면
늘 몽글거린다
같은하늘 아래 널 지나왔을 바람을
이젠 품어 안는다
혹여 산신령이 나타나 은도끼 금도끼를 물어 온다면
난 당연히 금도끼를 택하리라
오늘밤엔 금도끼 끌어 안고서
옷고름을 풀어 헤치리라
#책강대학#백일백장#완주#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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