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상자안으로 요물은 파고 들었다
온몸이 총을 맞아 갈갈이 찢어져 파편으로 나뒹글고 있었다 문 밖에서 들리는 발자욱 소리는 누구일까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자작나무숲이 뚫려버린 것일까 하루종일 전라도여자도 아닌 그렇다고 경기도 여자도 아닌 그저 영혼 없이 서 있었던 시간들에게서 벗어나 이제야 겨우 추영숙의 세글자 중 추 자를 꺼내 비에 젖은 촉을 하나씩 말리기 시작했는데 누구일까 누구에게 침범 당한 것일까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한 그사람일까 어느새 문틈 사이로 슬금 슬금 들어 오는 그사람의 냄새
눈꺼플 사이를 유영하는 요물이 웃고 있다 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라고 히히덕 거린다 왜 하필 나인가 난 너에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내인생의 불청객이 되어 버린 요물은 이제 떠날 생각이 없나 보다
오동잎 퍼질게 피어 이불이 되어 주던 날
오동잎 퍼질게 피어 온 세상이 오동잎이던 그 날, 어느 날 벌렁거리는 버스안에서 너에게 바닷 비린내가 난다고 말하던 너게게 난 아무말도 못하고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나? 한심한 여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하나 읽어내지 못한 영숙은 아직 아비의 폭행과 죽음을 향한 어미의 갈망에서 오는 두려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영숙은 본인의 뜻을 제대로 주장 하지 못했다 특별히 어미에게는 더욱 아무것도 주장 하지 못했다 입기 싫은 빨간팬티도 어미가 입으라 하면 그저 입어야 했다 왜! 왜! 그랬을까 안그러면 어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의식의 무의식의 세상으로 영숙을 몰아 넣고 있다는 걸 영숙은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해야만 어미의 생명줄이 이어지는줄 알았다 영숙에게서 바닷 비린내를 맡았던 그사람이 영숙의 첫사랑이었을까 네모난 상자에 누군가 침범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던 그사람이 문득 떠올랐을뿐이다
온 몸을 철제 바닥에 붙치고 두 손과 두 발은 놋끈으로 야무지게 묶은 후 두눈을 감아 본다 슬금 슬금 자작나무숲으로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간다 뙤약볕 가득차 버려 공기 중에 산소는 어디에도 없다 양갈래 말갈량이 소녀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두 눈을 비비고 무엇에 쫓기듯이 마루를 지나 부엌의 엄마에게 다가가 소리를 지른다 " 엄마 마당에 저 남자 누구야" " 응 오늘부터 우리집에서 새들어 살거야 시장에서 할머니를 만났는데 살 집을 구한다고 해서 그냥 우리집에 와서 살라고 했다" 입술이 딱풀로 고정 되어 버렸다 그렇게 오빠라 불리웠던 사람과의 첫대면이 시작 되었다 어디선가 풀벌레 엉금거리다 귓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기타를 두드리며 부르는 달맞이꽃 그리고 연이어 들려주는 눈이 큰아이 귓속으로 들어온 풀벌레는 밤새 기타를 치며 노랠 반복한다 점점 물먹은 미역이 되어 가는 영숙앞에 부끄러운 듯 얼굴를 감싸며 다가오는 태양이 영숙의 피부밑으로 파고드는 순간 영숙은 묶여 있던 손과 발의 놋끈은 풀어 재친다 다시 선택을 받는 빨간 구두 그리고 지난밤 비밀을 감싸주는 원피스를 입고 세상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장하며 자작나무숲 문을 연다 어김없이 횡단보도 앞에 섰다 어제 보았던 민머리의 짜리몽땅 아저씨는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초록비에 감기몸살이 난 것일까 초록불과 함께 톡 톡 건너는 영숙옆을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민머리아저씨 언제 왔을까 다행이네 근데 왜 저리 빨리가나? 민머리가 부끄러운가 영숙은 속으로 히히덕 거리다 어느새 사무실앞에 도착 하였다 만일 전라도라고 시비거는 놈이 또 나타난다면 오늘은 머리털을 다 뽑아서 전라도땅으로 날려버릴 기세로 기풍당당하게 출근하였다 입속에 혀가 있는지 혀속에 입이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기속에 묻혀서 다섯손가락 사이에 쇠붙이를 끼고서 하얀입김을 내뿝는 돌멩이가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눈꺼플 사이에서 춤을 추는 요물이다 " 야 이년아 이리 와 내가 오늘 너 죽여블란다!!! " 아비의 칼부림에 어미는 단칸방에 달린 창고로 몸을 숨겼다 아비와 어미가 싸질러 놓은 6남매의 자식들은 통곡에 통곡이다 하늘이 답을 해준 것일까 주변을 맴돌던 천사가 개입하였을까 옆방에 살던 덩치 좋은 총각이 들어와 싸움은 일단락 되었다 한 차례 해일이 지나고 난 뒤 아비와 어미는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표정 하나 없이 사이좋은 남자와 여자로 앉아 있다 그 때는 몰랐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나가지도 못하고 산다고 난 언제든지 죽을라고 마음만 먹으면 죽을 수 있다고 연탄창고안에 농약을 준비해 놓았다는 어미의 말이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을 덕분에 나의 손과 발은 늘 묶여 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어느샌가 나의 자작나무숲에 들어와 버린 그사람
등물에 온 몸의 하루를 씻어내던 계절이 지나고 보라색 눈화장이 한창을 이루던 날 공부하던 방으로 불쑥 들어오던 사람, 엄마는 나의 공부를 위해 과외를 부탁했다는 말과 함께 오빠만 남겨 두고 방을 떠났다 대학2학년의 한참 끓어 오르는 에너지를 감당 못하던 오빠는 5남매의 동생을 감당해내는 내가 경이로웠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아직 무슨색으로 피어날지 결정하지 않은 나의 입술에서 색깔 진한 장미꽃을 피웠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더니 어느 새 밥상 모퉁이를 차지하고 쓰러져 버렸다 영숙은 쓰러진 쇳덩이리 던져 버린채 빨간 구두에 두 손을 갔다 대었다. 지축의 굉음과 함께 태양은 또다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추고 이부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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