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에 철저히 왕따를 당했다
그렇게 난 모든 회식에 철저히 술을 거절 하였고 그 뒤로 사무실의 사무장은 눈에 보이게 날 왕따를 시켰다 하지만 난 왕따의 상황에서도 말하지 못했다 왜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냐고 따지지도 못했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경험한 아비의 폭행이 사회로까지 이어진 듯 하였다 나의 선임은 근무시간엔 술과 함께 그리고 6시 이후엔 업무를 난 누구에게도 일을 배울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불쌍히 바라봐 주는 건 오로지 내 곁에 숨겨둔 뽀족 구두뿐이다 눈물을 감추는 나를 툭 툭 친다 그러면서 하는 말 "걱정마 조금만 참아 그 곳으로 가자 내가 거기서 많이 사랑해줄께" 무슨말일까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나 몰래 뽀족구두 혼자서 다녀온 곳이 있을까 머릿속에서 그 달콤한 속삭임이 떠나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퇴근할 수 있겠지 6시가 되자 난 빛의 속도로 서류를 정리하고 구두를 싣고 가방을 든다 그들이 "아 이제 끝났다 오늘도" 라는 말이 나오기전에 난 안녕히 계세요 하고 사무실을 탈출하였다 히히히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내가 탈출한 것이다 독사들이 우글거리던 세상에서 나와 뽀족구두만의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날 어디로 데려갈거야
히죽 히죽 웃는다 그냥 해본 소리에 넘어간 것일까 아닐 것이다 찢겨져 가는 심장의 파편을 구두는 담아 두고 있는데 그런 그가 나에게 그냥은 하지 않을 것이다 횡단보도앞 초록불, 난 건너지 않고 서 있다 지금은 뽀족구두의 명령을 받아 움직여야 한다 "어디로 갈거야?" 실룩거리는 내입술을 올려다 보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진눈깨비가 어느새 굵은 눈송이가 될 때까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난 구두를 따라 뛸 수 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다 나무 한그루도 돌맹이 하나도 어쩌면 하루종일 오고 싶었던 곳인지도 모른다 난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 야 이년아 니가 뭐가 잘났어" 하고 빰을 후려치는 아비의 손길이 지나간다 그래 난 잘난 것이 없나 그래서 하루종일 심장이 찢기고 원피스의 조각이 파편처럼 날아 다녀도 그저 고갤 숙여야 했다 갑자기 뭉글뭉글 올라온다 파도인가 거친 파도가 알몸으로 벗겨 놓은 발가락 사이에서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혀가 입밖으로 탈출하며 미동 없이 서 있는 은사시 나무를 흔들어 깨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속에 파묻혀 입술이 굳어갈 즈음 뽀족구두가 톡 톡 친다 "가자"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고 뛰었다 다행히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아직 노란색을 가리키고 있다 돌아온 자작나무숲 문을 열고 오늘은 특별히 뽀족구두를 예쁘게 놓아 두고서 철제판에 몸을 뉘었다 이젠 벗어나야 한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영숙이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주장도 하지 못하고 작아지는 것은 어려서의 영향이 클 것이다 지금은 아비의 폭행도 어미의 자살 소동도 모두 강 건너에 있다 이젠 나로 살면 된다 이불끝을 꼭 잡고서 눈을 감는다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 온 몸이 경직 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이번에 요물이 길다랗고 매끈한 끈으로 날 감싸준다 어서 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내일 아침엔 정말 태양이 날 찾아올까 잠든 사이에 뽀족구두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 버리면 어떻게 하나 빨갛던 심장은 어느새 흙빛으로 변해갔다
시작된 감사. 그녀는 악바리였다
2년에 한 번씩 상부기관으로부터 받는 감사 며칠전부터 영숙은 밤늦게까지 텅빈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중이다 선임은 뭘 그렇게 하냐고 핀잔을 준다 아무도 없는 곳 그저 몸땡이 하나 들고 와서 실력만으로 살아야 하는 곳 그 곳에서 했던 업무에 대한 평가는 영숙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다 두 발이 두 손이 되어 작업 중이던 어느 날 " 어이. 영숙씨 오늘 술 한잔 하지 " 하필 내일이 감사 받는 첫 날인데 할 수 없다는 말을 못하고 또다시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네 발로 바닥을 엉금 거리기 시작하자 주변의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버렸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알몸의 나와 뽀족구두,빨간가방뿐이다 왜 원피스는 매일 파편처럼 찢어지는 것일까 갑옷을 입어야 하나 머릿속의 철도가 엉켜버렸다 횡단보도 앞에 일단 가야 하는데 혀는 이미 입밖으로 나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강대학#백일백장#소설#왕따#감사#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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