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코씩 준비하는 갑옷
어쩌면 의도적인 회식. 찢어진 파편을 연결하여 한 손엔 뽀족구두를 들고 다른 한 쪽엔 빨강가방을 들고서 도착한 자작나무숲. 긴 호흡을 하는 영숙앞에 은사시나무가 손 짓한다 영숙은 순한양이 되어 한 걸음 다가간다 "염병하네 가시네야 너 부르조아냐 음료수를 왜 남겨 이년아" 연극반 선배의 목소리가 다방안에 가득하다 그도 그럴것이 영숙은 대학을 가기전에 라면 하 나 음료수 한 병 사먹지 않았다 아비의 폭행 속에서도 어미는 늘 화롯불에 도너츠를 만들어 먹였고 라면을 먹으면 자식들이 죽는 줄 알고 불량식품이라는 가스라이팅으로 불량식품은 입에 대지 않았다 하물며 콜라는 어떻겠는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내 예술제에 연극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끼를 발산했던 영숙은 당연히 연극동아리에 들어갔고 영숙이 들어간 대학의 연극동아리의 군기는 군대 저리 가라였다 그 날로 영숙은 선배들로부터 부르조아로 낙인찍혀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저 년은 콜라, 라면 먹으면 죽어 그란디 얼마나 간가 두고 보자 배가 고파봐야 저 년이 정신을 차리제" 올라 와던 술이 확 깨는 순간이다 맞다 그 빡센 연극동아리도 4년을 버티고 졸업한 난데 무엇을 못할까 갑자기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과거는 날 하나씩 하나씩 무장시키에 충분 하였다
여고 졸업까지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던 충장로 우체국앞. " 영숙아 너가 저쪽에서 울면서 상근이한테 매달려, 그럼 상근이는 이 여자가 미쳤나 하면서 세게 밀어버리면 영숙이가 그 자리에 쓰러지면 되는거야" 강의가 끝나고 157강당에 모인 우리들을 충장로 한 중앙에 세워 놓더니 갑자기 주문하는 선배 이 걸 해내지 못하면 연극동아리를 나가야 한다는 엄포는 영숙에게 용기를 주었고 끝내는 임무를 완수 했다 갑자기 은가시나무가 살랑 거리며 춤을 춘다 찌어진 옷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만신창이가 된 뽀족구두는 차마 던지지 못하고 예쁘게 신발장 한 곳에 모셔 두었다 언젠가는 꼭 신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그래 난 영숙이여 내가 영숙이여 니들이 날 아무리 흔들어도 뿌리는 뽑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영숙은 갑옷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몸뚱아리는 철제판과 한 몸이 되어 눈꺼플이 감기울 때 안녕하지 못한 요물이 박장대소를 한다 "그래 보자 너 얼마나 가는지 넌 항상 작심삼일이잖아" 심하게 흔들리는 눈 꺼플 "나가라고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나가라고 난 할거야 누구도 찌를 수 없는 갑옷을 만들거야" 요물과의 실랑이가 한참이던 중 창문을 두드리던 마지막 남은 나뭇잎은 안녕을 고하나 보다 영숙은 다짐을 한다 그래 좋아 대학의 뒷산을 올랐던 깡다구로 작품을 위해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과의 협상을 모두 성공으로 이끌었던 내가 아니던가 이까짓 것쯤이야 처음 신어보는 하얀운동화가 갑자기 두 손을 들어 화이팅을 외쳐 주고 빨강가방 대신 둘러맨 가방은 내 등에 단단히 붙어 있다 든든하다 사거리 횡단보도앞 민둥산 짜리몽땅 아저씨는 오늘도 지각인다보다 보폭 넓게 서너걸음 사무실앞이다 두 손을 쥐고 운동화 한번 내려다 보고 화이팅을 외치면서 "좋은 아침입니다"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한 군상들이 꿈뻑거린다 (저게 미쳤나 갑자기 왠 지랄이야) 오늘이 감사 첫 날이다 전라도 깡다구를 보여주자 몇 날을 잠을 반납하고 준비한 서류들은 칼로 재 듯이 반듯하고 무지개색 명찰을 달고 있다 바라보는 영숙의 눈길이 행복가득하다 치고 들어오는 " 영숙이는 뭔 준비를 그렇게 했어 감사는 하나씩 줘야 일찍 끝나는거여" " 사무장님 전 주기 싫은데요" 목소리가 당차다 놀란 사무장이 토끼 같다 "너 앞으로 당해봐라 내가 니가 시피볼 여자가 아니여" 기상예보가 오랜만에 맞나보다 비가 온다더니 추적 추적 가을비가 내린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살붙이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처참하게 깍여가는 모습이 보였을까 커피 한 잔 들고 화장실옆 의자에 앉아 있는 영숙에게 수도검침하는 직원이 다가와 데이트 신청을 한다 "영숙씨 우리 드라이브갈까 감사도 끝나서 이젠 숨 좀 돌리지" "네 감사해요"그렇게 시작된 한 시간의 위로는 세상의 어떤 보약 보다도 다디 달았다 심장을 반으로 갈라 흐르던 시냇물은 자작나무숲 쇳덩어리 구멍이 열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동굴 한가운데 있던 마늘이 자리를 옮겼다 난 여전히 동굴 끄트머리 구석에 엉덩이 한쪽만을 데고 있을뿐이다 고이 잠든 쑥더미가 궁금하다 울리는 첫 번째 전화벨소와 함께 단칸방으로 들어오는 군상 그리고 다섯 번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군상들 나의 철제 침대는 이젠 공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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