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운무가 짱짱한 햇빛을 가렸다
막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산호등은 노란색에서 깜박거리고 거리의 모든 나무들은 째깍 째깍 소리를 내기 시작 하였다
날아가 버린 빨간구두를 찾느라 늦게 출발한 영숙은 점점 다가오는 검은 손의 공포에 온 몸이 굳어져 갔다
어미는 살고 있는 집을 다시 짓는다며 8식구를 단칸방에 쑤셔 넣었다 아침 일찍부터 나가는 어미 대신
남은 오남매의 도시락 12개는 올곶이 영숙의 몫이었다
새벽6시 공포스럽게 지축이 흔들리며 괴기에 가까운 공음이 울릴 때 영숙은 일자형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한다
일렬로 줄을 세우고 동그라미, 내모, 세모가 각자의 자리를 채울 때 딸그락 소리와 함께 태양을 맞이한다
발랄한 여고생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로 분장 후 가방을 든다
그렇게 한달여 시간이 지나고 어미가 지은 새 집으로 이사 가던 날 영숙의 감겨진 눈꺼플 사이로 우물안에 노닐던
뱀 한마리가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눈꺼플 사이에서 방황도 하지 않고 요물은 나가 버렸고 영숙의 눈 앞엔 늘 자작나무 숲이 가로 막고 있었다
눈 앞의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다 차라리 빨간 구두가 아닌 히끄므레한 하얀색 물건이라면 던지고 가버릴텐데
두 발이 격렬하게 왼쪽과 오른쪽을 반복하면서 횡단보도를 벗어날 수 있었다
" 어이! 영숙씨 잘잤어 어젠 멋지던데" 하지만 팀장의 눈엔 독기가 가득하다 왜 그럴까
어젠 도망가지 않고 2차까지 갔는데 직원들의 회식은 늘 1차에서 2차 노래방까지 가던 시절이었다
나의 인생은 그렇게 찬란하게 비틀대기 시작하였다
손과 입, 발이 바쁜시간 점심이 지나고 다시 시작 되는 업무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 야 기분 나쁘게 왜 전라도 말을 써, 너 전라도야" 눈 앞을 가로막고 있던 운무가 걷히기 시작하며
영숙의 입속 혀는 막춤을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춤사위가 끝나고 주변이 모두 하얗게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때 입술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 왔다 영숙에게 전라도냐고 시비를 털었던 그 남자는 어디로 간데 없고 옆자리 여직원이 물 한 컵을 들고 걱정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다 씨익 웃어주는 영숙,
이미 하트모양의 도형은 일그러져 버리고 한 중앙에 이렇게 쓴다 "그랑게 건들지 말드라고 나 전라도여" 한없이 약하디 약한 전라도 여자 영숙은 용암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전라도 여자도 아닌 그렇다고 경기도 여자도 아닌 그냥 악바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눈꺼플 사이를 오가는 요물의 모습은 한동안 영숙과 함께 동거하였다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는 요물은 무엇을 바랠을까 혹여 잘가라는 인사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내내 영숙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 사람은 잘 있을까 잘있으라는 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는데 지평선 저쪽이 빨간색이면 이쪽은 파란색일까 사랑을 받아 주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는 그사람, 죽어서 수의를 입는 순간까지 영숙을 사랑하겠다는 그 남자는 오늘밤 잘잘까
영숙의 몸을 감싸안은 철제 사이로 투닥 투닥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다 자작나무 숲에는 누군가 숨어들었나 보다 누구일까 공포가 손발를 조여와 꼼짝도 할 수 없다 다시 찾아드는 요물
미스고을 외치는 가수의 목소리가 자작나무 숲에 가득하다
신호등은 노란색에서 깜박이고/ 보헤미안
너는 자작나무숲에 가보았는가
너는 낙엽의 노랫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태양이 지구를 돌며 하는 말 " 난 네가 정말 싫어"
나의 방 커튼은 까맣다 색깔을 바꿔야 하나
빨간색으로
너는 자작나무숲속 울음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책강대학#백일백장#팔차선도로에서 머뭇거렸다#인생#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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