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옷을 꺼내 입었더니 갑자기 여름이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추워서 두꺼운 겨울 외투를 꺼내 입었더니 갑자지 여름장마란다 동굴안의 쑥더미가 규칙 없는 춤을 시작한다 " 야 영숙아 동네사람들이 우리집에 파출부 들였냐고 한다" " 무슨말이야" " 너보고 파출부냐고 일을 너무 잘한다고" 아마 어미의 외출 후 주어진 지시 때문이겠지 청소 해놓고 밥해 놓고 그리고 동생들 공부시키고 그 때는 파출부라는 말이 얼마나 비참한 말인지도 몰랐다 그저 일을 잘한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헬레레 사지가 방실 방실 하다 어미는 어쩌다 친구들이 집에 오면 점심이든 저녁이든 내가 반찬을 준비해서 헤어진 둥근상을 들게 만들었고 칭찬하는 친구들의 말을 훈장처럼 생각했다 어쩌다 무우채나 오이채가 굶은 날에는 한참을 네모상자에 앉아 " 그래갖고 어디로 시집가서 살것냐"를 수 도 없이 들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고생은 무우채를 잘못 썰면 정말 시집가서 쫒겨난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 잔ㅅ한다는 파출부라는 말에 기분좋아 덩실 덩실 춤을 춘 것이다 그 말이 얼마나 비참한 말이었는지 안 것은 일차선에서 사차선으로 나의 차선이 옮겨 지고 세상에 나가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 야 영숙이 칼질 봐라 예술이다 예술" " 아니 오빠 다른 사람도 다 이정도는 하지" " 야 누가 칼질을 너처럼 하냐 밥도 못할걸, 야 미혜야 너 밥할줄 알아" " 아니 오빠 우리엄마는 집에서 고생하면 시집가서도 고생한다고 집안일 안시켜 ㅎㅎㅎㅎㅎ" 대학 MT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뭐지 밥을 질게 하고 무우채를 두껍게 썰면 분명 시집가서 못산다고 했는데 난 무엇인가 손과 칼과 머리주머니가 각기 동서남북에서 방황하다 결국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차라리 잘 되었다 더 이상 칼을 잡지 않아도 되니까 칼을 보면 잡아야 하고 냄비를 보면 조리를 해야하는 가스라이팅에 평생을 갇혀 지낸 영숙에게는 손가락의 상처는 피난처가 되었다 동네에서 파출부 들였냐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미 그리고 그. 말에 좋아서 덩실거리는 영숙. 엉덩이 한쪽 겨우 대고 앉은 동굴에 무엇이 들어와 쑥더미가 춤을 출까 누가 들어 왔을까 심장이 쿵꽝대기 시작한다
세째는 결국 18개월에 어린이집에 가야만 했다
세째의 보모문제와 큰아이의 학교 부적응문제로 친정 곁으로 돌아왔다 시작은 창대 하였으나 날마다 이어지는 가스라이팅은 살갗이 쓰리고 염증이 나 진물이 줄줄 하다 겨우 멈추고 다시 찢어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막내는 막내와 세달 차이나는 아들을 가진 여동생이 봐 주기로 했다 사실 여동생은 임신 9개월 하혈 당시 본인도 임신한 몸을 이끌고 광주에서 안산까지 주중에 올라오고 주말에는 내려가는 - 남편과 주말부부였고 남편은 여동생이 주중에 경기도에 온다는 사실을 몰랐다- 강행군을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유난히 마음이 곱고 가족중에 희생을 가장 많이 한다 그렇게 시작된 막내의 육아는 아이들의 밥 먹는 문제로 결국 어미의 개입으로 동생과도 싸우고 어미와도 싸워 결국엔 도우미를 들이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어미에게 난 당신의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도구일뿐이었다 학교때는 당신들 부부싸움의 중재자로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당신의 인생의 하수구로 어쩌면 단 하루도 인간 차영숙은 없었다 남들이 우러러 보던 공무원시험에 당당히 합격했어도 난 남을 위해서는 내 목숨을 걸지라도 내 자신을 위해서는 물 한 컵도 얻어 마시지 못하는 바보 병신이었다 남들은 나를 아주 강하다고 평했지만 난 24시간내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세 아이를 세상에 내놓고 있었다 " 잘 부탁드려요 여사님" " 걱정마세요, 우리딸도 옆에 학교 방과후 교사예요" "네 그럼 다녀올께요" 퇴근 후 만나는 아이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나타낸다 자꾸만 내 등뒤로만 넘어온다 이상하다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하루종일 엄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보모를 진서리치게 싫어할 수 있는가 동료 직원들과 의논 끝에 집에 CCTV를 설치하고 난 두 눈이 감기지 않고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저것이 자식을 키운 엄마의 모습인가
아이의 보모는 아이를 안방에 넣고 문을 닫은 다음 하루종일 거실에서 허리를 돌리면서 혼자서 운동을 한다 아마 가끔 들어가는 것은 밥을 먹이기 위해서 인것 같다 두 발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다 맞이한 딸아이 나도 모르게 꼭 안아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인간이고 싶지 않았다 까만 머리를 모두 쏙아내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참아야지 " 여사님 오늘까지만 하시게요" " 아니 왜요" " 우리애하고는 안맞는 것 같아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눈물로 운전을 하고 얼마나 많은 밤을 은사시나무 옆에서 지새웠던가 쑥더미가 옆으로 엉금 엉금 기어 온다 울고 있는 내가 가여웠을까 심장도 없는 것이 손도 없는 것이 토닥 토닥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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