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속 쑥더미가 가재 걸음으로 다가 오고 있다
처음으로 사차선 도로를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공간인 자작나무숲도 빨갛게 타오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개운함이 하얀스루스를 입은 것처럼 부드럽게 만져 주는 듯 하였다 알아챘을까 쑥더미가 엉금 엉금 기어 나에게로 향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늘과 쑥더미만 바라보다가 한쪽 눈이 잠시 길을 잃어버렸을 때 쑥더미는 엉금거린다 마치 본인을 바라보라는 듯 아직 세상은 환하다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탈출한 팔차선 도로속의 수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열심히 걷겠지 꼭대기를 향하여 하지만 꼭대기엔 텅빈 하늘이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가찰까 내 알바는 아니다 난 이미 팔차선 도로를 탈출하여 나만의 동굴에서 지낸지 벌써 365일 지나고 또 200일을 지나고 있다 쑥더미의 움직임에 스쳐가는 화살촉이 나를 부른다. 환한 세상 거리는 뻥 뚫렸다 4차선으로 " 김창수씨가 남편이죠" "네" "경찰서로 오셔야겠습니다" "왜요" "오셔보면 알아요" 털끝만큼의 애정도 없이 살아가는 종이 위의 가족이지만 경찰서로 오라는 말에 허겁지겁 준비하여 도착한 경찰서 아무 생각 없는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 경찰서 직원의 말이 가관이다 술을 먹다가 여종업원에게 2차를 요구하였으나 응하지 않아서 구두발로 밟고 때렸다는 것이다 짐승도 아니다 온 몸의 공기구멍이 다 막혀버린 느낌이다 아니 2차를 요구하여서 응대를 안해주었다고 죽기직전으로 때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기야 결혼한 이후로 말이 되는 짓을 하기는 하였는가
팔자거니 살아 가자니 앞 길이 구만리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어본적이 없는 나는 피해자 가족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들은 나를 봐서 합의 해준다고 하여서 합의금으로 집을 팔고 땅을 사기 위해 모아 둔 목돈은 그렇게 말도 비정상적인 사람의 비정상적인 행위로 인하여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이혼은 안된다는 친정부모의 협박에 난 이혼을 할 수 도 없었다 팔자거니 하고 살아갈 길 밖에 없었다 나의 돌파구는 토요일,일요일이면 무당집과 철학원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어쩌면 돌파구 없는 나의 인생을 그들에게 푸념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은 비밀을 지켜 주지 않은가 아니더라도 내가 아는 사람에게 나의 비밀을 폭로할 일은 없는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철제용 침대는 여전히 나를 기다려 주었다 밤새 오동나무관에서 나온 바람을 기다렸으나 바람마저 해일이 데려가 버렸나 보다 이제 세상에 아무도 없다 밀려오는 공포가 짱짱한 놋끈으로 날 묶어 놓고 실눈을 뜨고서 바라본다 "넌 어디도 갈 수 없어 어디도" 마치 처절한 인생이 넌 내거야 영원히 하고 나를 짖누르는 것 같다 오늘밤은 잠들 수 있을까 뱃속의 아이가 조용하다 충격을 받았겠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우는 어미는 처음 보았을테니 비정상적인 남편은 되려 합의를 해줬다고 지랄이다 그 건으로 검찰까지 사건이 넘어가고 그 놈은 벌금형이다 삼백만원 그 돈도 나에게서 빠져 나갔다 어느순간부터 그 놈을 시아버지가 데려가길 기도한다 하지만 데려가겠는가 준치도 이빨이라고 당신 자식인데 밤새 몸에 묶인 놋끈을 풀기 위해 지쳐 쓰러져 지축의 굉음 소리와 함께 간신히 다리를 움직인다 지각하면 안된다 그들에게 먹이로 바쳐질 수는 없으니까 흐끄므레한 운동화를 싣고 백을 메고 횡단보도앞에 섰다 여전히 노란색이 깜박거린다 날 기다려 주는건가 고맙다 양 발은 시속 100미터의 속력으로 달려 드디어 사무실앞이다 생각 없는 군상들 가운데 앉아서 그림책 맞출 생각에 침을 질질 흐르는 동장 그 옆에는 어제의 분이 풀리지 않은 사무장 여전히 공기는 신음소리로 가득하다 책상문이 열리고 컴퓨터가 찡하고 인사하는 동안 때늦은 아침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눈길은 허공속에서 갈바를 모르고 목은 지상에 끄덕거린다 오늘은 보라색 비가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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