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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기

60대의 제2인생과 우울증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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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시작한 제2인생, 글을 쓰는 손은 멈추었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울증이라는 깊은 어둠과 매일 싸우면서도 내 이야기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길 바라며,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오랫동안 쓰지 못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바라보면 손가락이 굳어버립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넘치는데, 그것을 글로 옮기는 순간 모든 것이 얼어붙는 느낌입니다. 마치 얼음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답답함. 이것이 제가 지난 몇 개월간 경험해온 '글쓰기 공황'의 실체입니다.

60세, 많은 이들이 은퇴를 준비하고 여생을 계획하는 나이에 저는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습니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아오다 접어둔 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 이후 찾아온 것은 기대했던 창작의 기쁨이 아닌, 우울증이라는 예상치 못한 동반자였습니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제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쩌면 글이 멈춰버린 자신과 싸우고 있는 누군가,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생각지 못한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멈추어 설지라도, 우리의 마음까지 멈출 필요는 없으니까요.

1. 멈춘 글씨와 만난 우울증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단순히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또는 나이 들어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니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가빠지고, 손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글이야. 사람들이 비웃을 거야."
"평생 써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작가가 된다고? 가능하기나 할까?"
"이미 늦었어. 너무 늦었다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부정적 생각들이 제 머릿속을 점령했습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식욕도 사라졌고, 예전에 즐겨하던 산책조차 귀찮게 느껴졌습니다. 처음으로 올린 에세이가 제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했을 때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 가족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진단은 '우울 장애'. 의사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부담감, 성과에 대한 과도한 기대, 그리고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오는 순간, 마치 패배를 인정하는 것 같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의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2. 60세, 제2의 인생을 선택하다

회사에서 퇴직한 후, 저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습니다. 35년간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던 일상이 사라지자, 처음에는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 자유가 공허함으로 변해갔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느 날 책장 정리를 하다가 학창 시절 문예부 활동을 하던 시절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오래전에 꿈꾸었던 작가의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현실적인 이유로 기업에 취직하면서 접어두었던 그 꿈이, 다시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60세... 너무 늦은 걸까? 아니야, 아직 20년은 더 살 수 있어. 20년이면 충분히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어."

그렇게 저는 글쓰기 수업을 등록했습니다. 처음으로 글쓰기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의 그 설렘과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수업에서 만난 다른 수강생들은 대부분 저보다 젊었지만, 선생님은 늦게 시작한 저의 열정을 높이 평가해주었습니다.

첫 에세이를 완성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마치 오랜 여행 끝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 것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하고, 조심스럽게 제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댓글이 달렸을 때, 그것이 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3. 매일 우울증과 싸우며

약을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약의 효과인지, 아니면 제 의지가 강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덜 힘들어졌습니다.

치료와 함께 제가 시도한 방법은 '작은 성공'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100단어라도 쓰기, 한 편의 글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메모라도 남기기,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감상 남기기 등 글쓰기와 관련된 작은 활동들을 실천했습니다.

어느 날은 정말 아무것도 쓸 수 없어서, 그저 "오늘은 글을 쓸 수 없다"라는 한 문장만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이 이상하게도 다음 문장을 끌어냈고, 어느새 제 무력감과 좌절감에 대한 짧은 에세이가 완성되었습니다.

"글쓰기 공황은 어쩌면 내가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해서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누구나 처음에는 서툴다. 60년을 살아왔어도, 글쓰기에 있어서는 나는 아직 '초보자'니까."

상담사는 제게 '자기 연민'과 '자기 수용'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았습니다. 나이 들수록 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저를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울증과의 싸움은 매일매일의 전투입니다. 어떤 날은 이겨내고, 어떤 날은 패배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선다는 것, 오늘 넘어져도 내일은 다시 시도한다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4.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왜 계속하나요? 그냥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게 어떨까요?"

상담사가 던진 이 질문에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걸까요?

첫째, 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닌, 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입니다. 35년간 회사에서 숫자와 보고서 사이에서 살았다면, 이제는 제 진짜 목소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둘째,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60대가 겪는 고민과 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셋째,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포기하는 순간 정말로 '늙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글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글쓰기는 제게 치유의 과정이자, 제 존재의 증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결론

우울증과 글쓰기 공황을 겪으면서 깨달은 중요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둘째,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진정성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셋째, 실패와 좌절은 과정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몇 명이나 제 글을 읽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제 내면과 대화하고 제 삶을 정리하는 소중한 과정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전히 우울한 날들이 있습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좌절하는 날도 있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첫 글에 달린 한 댓글을 떠올립니다.

"60대에 새로운 시작을 하시는 모습이 정말 멋집니다. 저도 용기를 내볼게요."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날들이 모여 어느새 저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완벽한 글을 쓰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60대에 시작한 제2의 인생, 그리고 우울증과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어쩌면 이 싸움은 평생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글이 멈추어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제 글이 지금 이 순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이야기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합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리고 오늘 저는, 오랜만에 글이 막히지 않고 술술 써내려간 날을 작은 성공으로 기록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은 글쓰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날입니다. 이 작은 승리가 모여 언젠가는 더 큰 성취가 될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한 걸음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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