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가족을 위해 강인함을 유지하는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소화 장애와 지속적인 불편함에도 가족에게 의지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살아가는 모습은 많은 부모들의 숨겨진 현실입니다.
1.매일 아침 몰래 삼키는 통증
아침이 밝아오면 새로운 하루의 시작과 함께 몸 안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됩니다. 음식을 먹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불편함, 소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설사, 그리고 항상 따라다니는 체한 듯한 묵직함. 이런 통증들은 마치 저에게 붙어버린 그림자처럼 떨어질 줄 모릅니다.
거울 앞에 선 저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가장 건강해 보이는 표정을 연습합니다.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 아무도 보지 않는 이 시간만큼은 제 얼굴에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곧 문이 열리면, 이 모든 표정은 사라지고 평소의 든든한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의사는 만성 소화 장애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 진단했지만, 제 아이들에게는 이런 의학 용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지, 건강 문제로 걱정을 안겨주는 부모가 아닙니다.
2.아이들을 위한 가면 쓰기
성인이 된 내 아이들. 그들은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순간 저를 찾고 의지합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부모에게 기대는 마음이 더 커지는 걸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차가움을 알게 될수록, 변함없이 따뜻한 부모의 품이 그리워지는 것처럼요.
어제도 큰아이가 직장에서 있었던 일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는 동안 배 속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그 어떤 불편함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걱정 마, 넌 잘 하고 있어. 항상 네 편이야." 이런 말을 건네는 동안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작은아이는 주말마다 집에 옵니다.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할 때면 항상 내적 갈등이 일어납니다.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함께 즐기고 싶지만, 그 후에 찾아올 고통도 이미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웃으며 "그래, 뭐 먹고 싶니?"라고 물으며 또 하나의 작은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런 가면 쓰기가 때로는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을 볼 때면 모든 것이 값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세상에 당당히 서는 모습이 제가 견디는 이유니까요.
3.숨겨진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들
저만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피곤한 눈빛 속에,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의 참은 한숨 속에, 그리고 직장에서 미소 짓는 동료의 긴장된 어깨 속에 각자의 고통이 숨어 있습니다.
만성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졌다고 표현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매 순간 통증이나 불편함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화 장애, 만성 통증, 자가면역 질환, 우울증...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종종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합니다.
"그냥 마음가짐의 문제야",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운동을 더 하면 나아질 거야" 같은 말들은 고통받는 이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정말 원하는 것은 그런 조언보다, 그저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위로일 테니까요.
4.강인함의 새로운 정의
강인함이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강인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진정한 강인함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것, 때로는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요.
매일 아침 통증을 느끼면서도 일어나 가족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는 것, 설사와 복통으로 힘들면서도 직장에 가서 맡은 일을 해내는 것, 체한 듯한 불편함 속에서도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 이 모든 것이 강인함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 몸이 항상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의 큰 좌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좌절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완벽한 건강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을 실천하는 능력이 더 소중한 가치일지도 모릅니다.
5.함께 나누는 용기
이렇게 글로 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아픔은 감추고, 강함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요.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분이 계신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매일 치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 속에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일상을 지켜내는 당신의 노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제가 매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더. 그냥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어느덧 몇 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더 단단하게 성장했습니다. 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어려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건강과, 누군가는 경제적 문제와, 또 누군가는 관계의 어려움과 싸우고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싸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작은 위로와 용기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여정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오늘도 아픔을 숨기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버티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당신의 희생과 사랑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 함께, 그저 오늘 하루만 더 버텨봅시다. 그리고 내일도, 그 다음 날도,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나아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