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사이의 혈관들이 동시에 터져 버렸다
7살이 된 큰아이의 유치원을 위해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도시에서 가장 학군이 좋다는아파트로 이사를 강행했다 뱃속의 아이는 임신 9개월 둥지를 틀 집이 정해 지고 그리고 이삿짐을 싸는 동안 정신 나간 어떤놈은 세상에 빠져 날마다 새벽이슬을 맞고 들어 온다 난 무엇 때문에 뱃속의 아이를 임신 하였을까 이유는 정신나간 아빠를 둔 아들에게 친구같은 형제를 주고 싶어서 였다 백프로 난 그것이 나의 희생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큰아이에게 도움이 되며 나에게는 희생이 될까 라고 하얀 입김이 나오는 자작나무숲에 물어 본다 답이 없다 아마 아니라는 뜻이겠지 " 갑자기 하혈을 한다 119를 불러서 도착한 산부인과 응급실 담당 의사는 깜짝 놀란다 전치 태반이어서 하혈을 한다는 것은 태아의 사망과 결국엔 산모의 사망까지 이르게 된다고 잔뜩 겁을 준다 시작된 산부인과 응급실과 집 침대위의 생활이 반복 되면서 10달을 채워 나와야 할 아이는 3주 먼저 나와 버렸다 낳고 보니 전치 태반은 오진 이었고 - 자연분만을 함- 하혈의 원인은 막달에 이사를 하면서 무리의 결과 였다-이사부터 짐을 풀고 정리까지 혼자의 몫이었다, 그 미친놈은 이삿짐이 들어온 집에 들리더니 근처 뉴코아백화점 쇼핑을 간다더니 새벽까지 소식이 없다- 아이를 낳고 나자 춤추며 떠다니는 퍼즐들을 맞추다 엎드려 잠들기를 몇날을 했는지 모르겠다 결국엔 답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퇴원하고 친정어미의 산후조리를 받았다 아이가 태어나기전에 임신 두달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중에는 응급실과 집을 반복하는 나의 산전 조리를 했었다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 왜 그 때는 집에 사람을 들여서 보호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그럼 나의 업이 쌓이지 않았을텐데 평생 나를 따라 다니는 업이 되었다 차라리 날 모래 가득한 해변으로 오라 하시지 그럼 모닥불 태우면서 빠져 나갈 구멍을 찾았을텐데 나를 휘감고 있던 요물은 지혜가 없을까 아님 나를 깊은 늪으로 인도하는 것이 요물의 목표일까 " 오늘도 박서방은 새벽인가보다" " 그러겠지" 더 이상 아무말도 없으시다 " 혜정아 사람 좀 사서 미친놈 뭐하고 다니는지 알아 봐야겠다 소개 좀 해줘" " 알았어 언니" 낮선 남자의 목소리 " 여보세요 흥신손데요 혹시 이혼까지 생각하시나요 어디까지 생각 하냐에 따라 일이 달라져서요" " 이혼은 안할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현장 사진은 필요 없네요" 그렇게 일주일 결과는 날마다 춤추는 카바레를 다니고 그리고 밤이면 집 근처 여자집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공무원 신분으로 내가 조사한 것만 가지고도 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조사는 거기서 끝났고 니가 무엇을 하든 니 옆에 누가 있던 그 년은 그저 세컨드뿐이라고 다짐하면서 손가락 열개를 계속해서 세우다 잠이 들었던 수 많은 시간들을 언젠가는 세상에 하소연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난 겁이 많고 아무 주장도 하지 못하는 길가의 민들레 보다 못한 삶이었다 " 주사님 주사님 아이 못키워 드리겠어요 관절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셋째를 위해 미리 구해 놓은 보모의 통보이다 큰아이의 수면제 사건으로 다른이는 구하지 못하고 사무실의 일을 도와주는 여사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그것마저 어긋나 길을 가려한다 곧바로 알아보는 공무원의 전입과 전출 그렇게 고향을 떠난 인생은 두 아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릴적 뛰놀던 고향도 낮선 이방땅이었다
큰아이는 집 근처 초등학교 1학년으로 전학을 했고 셋째는 이제 막 백일을 지나고 있었다 아직은 들판에 개구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고향이라는 단어 하나로 따스한 이불을 덮었다는 기분을 의도적으로 느낄려고 노력 했다 며칠째 요물은 두리번 거리지도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일까 아님 나를 구렁텅이로 넣을 방법을 생각하느라 잠행 중일까 이사 첫 날 어미와 여동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 난 침대위에서 어미에게 말한다 " 그동안 엄마한테 빌려 것 다 갚았네" 그 날은 내가 계돈을 받은 것을 정산하였다 이자로 나온 금액 200이 넘는 금액은 집을 이전하는데 기타 잡비로 다 들어갔다고 어미는 이야기 한다 어느 때처럼 곗돈으로 받은 돈은 실체가 없다 처음엔 좋았다 피붙이 옆이라는 것이 좋았고 비정상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다시 코끼리는 냉장고안으로 들어 가야 했다
어릴적 그 때로 돌아가 어미의 가스라이팅은 시작 되었다 아이들의 반찬, 냉장고, 집안 청소 어미의 가시거리 밖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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