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하루의 시작
오늘은 평범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퇴직 후의 일상은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새벽녘에 울린 전화벨 소리가 하루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웃던 지인이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47세, 미혼, 그리고 70세 노모를 모시고 있는 그녀에게 이 진단은 그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회복지공무원으로 30년을 보내고 퇴직한 나는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 신청이 당장 급한 일이었다. 그녀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은 무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내 경험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암과 마주한 삶의 현장
1. 갑작스러운 진단 앞에서
병원 복도에서 만난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계셨다. 70세의 몸으로 딸의 암 진단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그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셨을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며 하신 첫 마디는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어..."였다. 어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마침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복통이 심해서 응급실에 갔더니 이렇게 됐어요." 어머니는 말씀하시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병원에서는 위암 3기래요. 수술은 했지만 항암치료를 해야 한대요." 소매로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병실에 들어가자 수술을 마친 지인이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나를 보자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 속에는 두려움, 불안, 그리고 희망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대요.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고 하는데, 어떤 가발이 예쁠까요?"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었다.
간호사가 약을 가지고 들어왔다. 지인은 약을 받아 들며 내게 물었다. "진단서를 받았는데,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일도 못 할 것 같은데..."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생 일하며 홀어머니를 모시던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투병은 경제적 공포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너무 걱정하시니까 내가 더 힘들어요." 그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인생의 전부가 저인데, 제가 이렇게 아프면 어머니는 어떻게 사실지..."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는 어떻게 혼자 생활하실까, 병원비는 어떻게 마련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밤에 잠이 안 와요."
순간 그녀의 병상 옆에 놓인 작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에서는 노트 한 권이 삐져나와 있었다.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녀는 암 진단을 받은 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언젠가 제가 이겨내고 나면,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그 말에 나는 그녀의 강인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있잖아요. 그리고 어머니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분이세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조금씩 안도감이 번져 나왔다. "제가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있으면서 쌓은 경험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신청부터 시작해볼게요."
2. 관료적 시스템 속에서 인간을 찾아
국민기초생활수급권 신청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서류 더미와 복잡한 절차, 그리고 종종 인간미가 결여된 시스템은 이미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담당자들도 모두 그녀의 상황에 공감하며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해 주었다.
"진단서 외에도 가족관계증명서, 재산 관련 서류, 소득 관련 서류 등이 필요합니다." 복지센터의 담당 직원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 어린 위로가 느껴졌다. "암환자 특별지원 프로그램도 있으니, 그것도 같이 신청해 드릴게요." 그는 추가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질문하셨다. "얼마나 지원받을 수 있나요? 병원비는 어떻게 되나요? 약값은요?" 노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딸에 대한 걱정과 함께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드리려 노력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중증질환 산정특례 제도가 있어서 본인부담금이 크게 줄어들거예요. 또 지역 암센터에는 심리상담 서비스도 있고, 환자와 가족을 위한 자조모임도 있답니다." 내 설명을 들으며 어머니의 긴장된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서류 작성 중 갑자기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내가 자식 셋을 키웠는데, 두 아들은 멀리 살고 연락도 잘 안 해요. 이 딸만 내 곁을 지켰는데... 만약 이 애가..." 말을 잇지 못하고 어머니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고 가만히 그 슬픔에 동참했다.
한 젊은 공무원이 내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처럼 퇴직하신 후에도 이렇게 다른 분들을 도와주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도 나중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말에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저 내 직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작성을 마친 후, 복지센터 직원은 신청이 승인되면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여 깊이 감사를 표하셨다. "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끼리였으면 어떻게 했을지..."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퇴직 후에도 내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딸의 투병 과정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셨다. "항암치료 기간에는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하나요? 집안 청소는 어떻게 해야 감염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질문 하나하나에 대답해 드리는 동안, 나는 이 노모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인 손으로 메모를 하시는 모습, 딸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시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는 작은 가게에 들러 딸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셨다. "이제 입맛이 없을 텐데, 그래도 좋아하는 거라도 조금씩 먹어야지..."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사랑과 걱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 작은 봉지에 담긴 간식 하나하나에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병실로 돌아오자 지인은 의사와 상담 중이었다. 항암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6개월 정도의 항암치료가 필요합니다. 힘든 과정이지만, 희망적인 것은 수술이 성공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의사의 말에 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싸워나갈 결심이 담겨 있었다.
의사가 나간 후, 지인에게 서류 절차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어제까지만 해도 앞이 캄캄했는데, 조금 빛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사회복지사로서의 내 직업이 때로는 사람들의 삶에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3. 우연한 만남과 세대의 교차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딸아이가 계속해서 설명을 한다 의대를 가서, 호주로 이민을 가 나와 함께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딸아이는 들뜬 목소리로 호주의 의료 시스템과 생활 환경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엄마, 내가 꼭 좋은 의사가 되어서 엄마 평생 편하게 해줄게. 호주는 복지도 좋고, 우리 같이 바닷가 근처에 살면 정말 좋을 것 같아. 엄마 친구들도 놀러 오라고 하고!" 딸의 목소리는 희망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난 미소를 지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 딸 하고 싶은 대로 하자." 하지만 난 이젠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이젠 나홀로 이고 싶다
딸은 태블릿을 꺼내 호주 시드니의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여기가 우리가 살 도시야. 여기는 병원이 있는 곳이고, 이쪽에는 예쁜 공원도 있어!" 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신나게 오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토익 점수를 더 올리고, 열심히 공부해야지 딸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딸아이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나는 문득 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했다. 47세, 미혼으로 살아온 나의 삶. '이제는 자유롭게 살자'고 늘 다짐했지만, 홀로 있는 자유와 누군가와 함께하는 행복 사이에서 내 마음도 오가는 것을 느꼈다.
오늘의 모든 만남과 경험을 돌아보며, 나는 감사함을 느꼈다. 건강한 내 몸에 대한 감사함,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감사함.
결론 - 작은 나눔이 만드는 큰 울림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건강한 내 몸에 감사함을 느끼며 작은 식당에 들러 따뜻한 나무곰탕 한 그릇을 먹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오늘 하루의 감정들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오늘 나는 암과 싸우는 지인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딸.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이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사랑이었다. 병마와 싸우는 딸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를 걱정하는 환자의 사랑, 딸의 꿈을 위해 낯선 환경도 감내하려는 어머니의 사랑.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일하며 나는 많은 서류를 작성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때로는 관료적인 시스템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내 직업이, 내 삶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지식과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걸어온 길의 가치였다.
병실을 나서며 지인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이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제가 이겨낼 힘이 생겼어요." 그 말에 나는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준 것보다 그녀에게서 받은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용기, 희망, 그리고 삶에 대한 감사함.
나무곰탕의 깊은 맛처럼, 인생도 때로는 쓰고 때로는 달다. 하지만 그 모든 맛이 어우러져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오늘 하루,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고, 내가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지인의 완치를 기원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나눔을 통해 세상에 더 많은 희망과 사랑이 퍼져나가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