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의 하루, 그리고 감사
새벽의 어둠을 헤치고 나선 병원길, 불안과 걱정이 함께했던 그 시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빛처럼 피어난 감사함.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1. 새벽의 출발
새벽 4시 40분, 아직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그 시간에 알람이 울렸다. 평소라면 귀찮음과 함께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23살 딸아이의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까지의 길은 멀었지만, 딸아이의 건강을 확인하는 시간이어서 일까 가볍지만은 않다
창밖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만이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교차하는 마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선 '잘 될 거야'라는 작은 위안이 솟아올랐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 카페에 들러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이 평범한 일상의 작은 행복이 오히려 내게 위안이 되었다.
불확실함 앞에서도, 일상의 작은 행복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의 온기가 차가운 불안을 녹이는 그런 순간들.
2. 기다림의 시간
병원 대기실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40세에 얻은 귀한 딸아이, 태어날 때부터 여기저기 몸이 약했던 그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졌다.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닐까'라는 자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것, 충분히 건강하지 못했던 내 몸, 그리고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불안...
대기실의 시계는 느리게 움직였다. 옆에 앉은 딸아이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어른이 된 딸의 모습을 보며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렀는지 새삼 깨달았다. 벌써 23살,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나이. 그 모든 시간 동안 건강 때문에 고생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의사를 기다리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 이 기다림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가. 아이가 있다는 것,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 순간부터 내 마음에 작은 빛이 켜지는 것 같았다.
3. 희망의 순간
의사의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검사 결과지를 꼼꼼히 살펴보던 의사는 예상치 못한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많이 좋아졌네요. 이 부분은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앞으로 5년만 더 지켜보다가 마무리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기쁨과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이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불안과 걱정 속에서 지새웠던가. 기쁨과 허탈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 나를 휩쓸었다.
딸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꼭 쥐었다. 그 손의 온기가 나에게 전해졌다. 갑자기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이 의미 있는 여정으로 느껴졌다. 슬픔이 올라올 때마다 입술로 되뇌었던 그 말, '감사합니다'가 이제는 진심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왔다.
희망은 때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희망은 우리가 지나온 모든 어둠에 의미를 부여한다.
4. 귀갓길의 깨달음
병원을 나서니 이미 해는 저물고 있었다. 새벽에 출발해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긴 하루였다. 지하철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얼마나 특별했는지 생각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는 어떻게 이 하루를 견뎌낼까 막막했지만, 막상 닥치니 견딜 만했다. 아니, 견디는 것을 넘어 그 속에서 감사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했다. 모두가 자신만의 고통과 기쁨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생각이 이상하게도 나를 덜 외롭게 만들었다. 서울로 가는 열차안에서는 한 숨도 자지 못하던 아이가 내려오는 열차안에서는 깊에 잠을 잔다 얼마나 긴장 했을까 서로가 깊은 마음은 숨기지 있지만 우린 안다 힘든 하루였다는 것을
귀갓길에 내린 가랑비는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우산 없이 빗속을 걷는 동안, 각오했던 것보다 덜 힘들었던 오늘의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이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은 기도였고, 명상이었고, 위안이었다.
5. 밤의 작업, 그리고 치유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를 켜는 것이었다. 새벽 3시까지 블로그 작업을 했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왜 잠을 자지 않고 블로그 작업을 하냐고.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동안,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오늘의 감정, 생각, 경험들이 손끝을 통해 모니터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내 마음도 함께 정화되는 듯했다. 슬픔, 불안, 기쁨, 안도감,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함. 이 모든 감정이 글이 되어 나를 떠나갔다.
차라리 눈을 뜨고 작업하는 것이 복잡한 머릿속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그 직감이 맞았다. 블로그에 오늘의 경험을 담아내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에 감사해야 할지 더욱 분명해졌다. 건강이 호전되고 있는 딸, 함께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
때로는 우리의 고통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강력한 치유의 방법이 된다. 그것은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이지만, 동시에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감사, 그 작은 빛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가 또 다른 새벽에 마무리되었다. 병원에서의 긴 시간, 걱정과 불안, 희망의 순간, 그리고 블로그 작업까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발견한 것은 '감사'라는 작은 빛이었다.
나이 40에 얻은 딸아이가 여기저기 몸이 약한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달았다. 슬픈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외쳤던 '감사'라는 말은 단순한 위안을 넘어, 진정한 삶의 태도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때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완전히 어둠 속에 있지 않은 것이다. 감사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능력이며,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지혜다.
오늘의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모든 것이 감사'라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겼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 내일의 나를 더 강하고 평온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믿는다.
새벽의 창가에 앉아, 감사의 마음을 담아
- 2025년 3월의 어느 날